저희 법무법인(유) 세종의 IP 그룹은 뉴스레터를 통해 유럽의 새로운 단일특허 및 통합특허법원(Unified Patent Court, 이하 “UPC”) 제도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2023. 6. 1. 새로운 유럽 특허제도가 시행되고 동시에 UPC도 개원을 한 이래, 2023. 6. 22. UPC의 Local Division인 뒤셀도르프 법원에서 첫번째 UPC 1심 법원의 결정이 내려졌고(심문절차를 거치지 않은 ex parte 방식의 결정), 심문절차를 거쳐 inter partes 방식으로 진행된 사건 에서는 2023. 9. 19.에 첫번째 가처분 결정(UPC CFI 2/2023 사건)이 내려졌습니다.  이후 지난 2024. 2. 26. 최초로 UPC 항소심 법원의 실체 판단이 담긴 결정이 내려졌는데, 이는 위 UPC CFI 2/2023 사건 결정에 대한 불복 사건(UPC_CoA_335/2023)이었습니다.  위 항소심 사건의 결정(이하 “대상 결정”)에서는 여러 쟁점들에 대해 흥미로운 판단이 이루어졌는바, 이하 간략하게 대상 결정의 내용 및 의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대상 결정에서는 유럽특허의 보호범위를 정하는 기준에 대해 설시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 특허의 보호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유럽특허협약(European Patent Convention, “EPC”) Art. 69(1)에 규정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유럽특허의 보호범위는 청구범위(claim)에 의하여 정하되, 그 해석에 있어 발명의 설명 및 도면을 참작하여야 합니다.  이 규정의 취지 및 의미를 보다 상세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 ‘Protocol on the Interpretation of Art. 69 EPC’인데, 해당 protocol 에서는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를 청구범위의 엄격한 문언적 해석에 의해서만 정하거나 또는 청구범위는 단지 지침(guideline)으로만 삼고 통상의 기술자 관점에서 명세서 및 도면을 통해 발명자가 의도한 것으로 파악되는 부분까지 확장하는 것과 같은 극단적 해석은 지양되어야 하며, 특허권자에 대한 합당한 보호의 필요성과 함께 제3자에 대한 법적 안정성을 고려하여 그 중간 영역에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상 결정에서는 위와 같은 종래의 해석기준을 그대로 채택하면서도, 그러한 청구범위의 해석은 침해 판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특허의 유효성 판단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는, 청구범위를 통해 문언적으로 파악되는 발명뿐만 아니라 그 외의 보호범위 영역 내에 속하는 발명이 선행기술로부터 용이하게 도출되는 경우에도 해당 특허발명이 무효로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대상 결정의 판시사항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가처분 사건에 있어서의 증명의 정도에 관한 부분입니다.  UPC Agreement Art. 62(4) 및 그에 관한 Rule of Procedure 211.2에 의하면 가처분 결정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i) 가처분 신청인이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정당한 권한이 있고, ii) 가처분의 근거가 되는 특허가 유효하며, iii) 당해 특허에 관한 권리가 침해되고 있거나 침해가 임박하다는 점에 관하여 법원이 충분한 정도의 확실성(sufficient degree of certainty)이 있다고 판단하여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UPC 항소심 법원은 위 규정에서 말하는 ‘충분한 정도의 확실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more likely than not’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즉, 증명하고자 하는 사실이 존재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다는 정도만 증명된다면, 해당 사실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할만한 충분한 정도의 확실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는 취지입니다. 

나아가 UPC 항소심 법원은 증명책임의 소재에 대해서도 설시하고 있는데, 가처분 결정이 ex parte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아닌 한, 가처분 신청인이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정당한 권한이 있고, 당해 가처분의 근거가 되는 특허가 침해되고 있거나 침해가 임박하다는 점에 관하여는 가처분 신청인이 증명책임을 부담하나, 당해 특허가 무효라는 점에 대해서는 가처분 피신청인이 증명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술한 증명의 정도는 특허의 무효 여부에 관한 점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하며, 따라서 가처분 피신청인 입장에서는 가처분 신청의 근거가 되는 특허가 무효일 가능성이 무효가 아닐 가능성보다 높다는 점만 증명하게 되면 당해 특허의 무효 여부에 대한 증명책임을 다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는 비교법적으로도 매우 낮은 수준의 기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대상 결정 사안에서 UPC 1심 법원은 특허권자측 특허가 유효하고 침해도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가처분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UPC 항소심 법원은 위에서 언급한 기준에 따라 당해 특허가 신규성은 인정되나, 그 특허가 통상의 기술자 관점에서 선행기술 대비 자명(obvious)하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 보다 높다고 보아 가처분의 인정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며, 그에 따라 1심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취소하였습니다.  

이상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UPC 항소심 법원이 대상 결정을 통해 제시한 가처분 사건의 증명 정도에 관한 기준은, 만족적 가처분에 해당하는 특허침해금지가처분 사건의 경우 피보전권리 및 보전의 필요성에 관하여 고도의 소명이 요구되고, 나아가 특허가 무효로 될 것이 명백한 경우 피보전권리의 행사가 권리남용에 해당되어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기준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UPC 항소심 판결의 기준에 따르면, UPC에 의해 심리되는 가처분 사건에 있어서는 특허 무효 여부가 쟁점이 되지 않는다면 가처분이 인용될 가능성이 우리나라에 비해 보다 높지만, 특허 무효 여부가 강력하게 다투어진다면 가처분의 인용 가능성이 우리나라에 비해 보다 낮은 것으로 전망해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