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9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되었습니다. 해당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관하여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나 2026. 2. 28.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금번 뉴스레터에서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주요 내용 및 그 시사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안의 배경
2015년 발효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은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다자간 협약으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씨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더 나아가 1.5도씨 이하로 제한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각 당사국은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하여 자체적으로 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 즉 국가결정기여(National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5년 주기로 제출하여야 하며, 당사국총회는 2023년부터 5년마다 협정의 이행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 GST)을 실시하게 됩니다.
또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는 2018년 10월 발표한 「지구온난화 1.5도씨 특별보고서」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씨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야 하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였고,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씨 이내로 제한하기 위하여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Zero, 탄소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을 달성해야 한다고 보고하였습니다.
해당 제안 이후, EU를 필두로 미국, 중국, 일본 등 각 국의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졌으며, 우리나라는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이어 2021년 9월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였습니다.
2.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 및 관련 규정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여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것을 국가비전으로 제시하고 있고(법 제7조 제1항), 이와 관련하여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퍼센트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감축목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법 제8조 제1항). 동 법 시행령에서는 그 비율을 40퍼센트로 정하고 있는데(시행령 제3조 제1항), 이는 우리나라가 지난 2021년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한 NDC와 동일합니다.
한편, 정부는 파리협정 등 국내외 여건을 고려하여 중장기감축목표 등을 5년마다 재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파리)협정 제4조의 진전의 원칙*에 따라 이를 변경하거나 새로 설정하여야 합니다(법 제8조 제4항).
*진전의 원칙: ‘현재 정해진 NDC보다 진전되는 노력을 시현할 것’이라는 파리협정 제4조 제3항의 원칙을 말하며, 이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것임.
3. 청구인의 주장 및 헌법재판소의 판단
청구인들은 ①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배출량의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도록 설정하고 같은 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이 그 비율을 40%로 정한 것(2030년까지의 감축목표 설정) 및 ②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2031년 이후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하지 아니한 것(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 미설정)은 국가의 최소한의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서 과소보호금지원칙 등에 위반되므로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1) 과소보호금지원칙에 대한 판단
①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 설정
헌법재판소는 2030년 감축목표 비율의 수치는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를 때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전제로 한 중간 목표에 해당하고 그 구체적 수치설정에는 다양한 고려 요소와 변수가 영향을 미치는 이상그 수치만을 이유로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과소보호금지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②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 미설정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만 규정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대하여는 어떠한 정량적 기준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있고, 관련 법령의 체계를 살펴보더라도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데,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으로,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하여 과소보호금지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특히 ‘진전의 원칙’을 적용하더라도 ‘진전의 속도’는 현실적인 여러 여건 때문에 때문에 느려질 수 있는데, 2031년 이후의 감축목표에 관하여 정량적인 기준을 법률에 대강이라도 정하지 않고, 정부의 재량에 맡겨 두면 정부가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이 많은 우리나라 산업특성을 고려하여 단기적 감축 부담을 완화하고자 하는 유인이 높을 것이고, 이 때문에 감축비율을 가속화하지 못하여 온실가스의 누적배출량이 증가하게 되면 2050년의 탄소중립 목표달성이 요원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2) 법률유보원칙에 대한 판단
①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 설정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은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의 정량적 수치의 하한을 정하고 대통령령으로 구체적 수치를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수치와 경로를 정하는 것은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영역에 해당하여 법률에서 이를 상세하게 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는 데에는 정부의 외교적 권한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②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 미설정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서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관하여 대강의 정량적인 수준도 규정하지 않은 것은 의회유보의 원칙을 포함한 법률유보원칙에도 위반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헌법재판소는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감축경로를 계획하는 것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영역으로, 2031년 이후 기간의 감축목표 역시 그 대강의 내용은 헌법 외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반영하는 규범인 ‘법률’에 규정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미래세대는 기후위기 영향에 더 크게 노출될 것임에도 현재의 민주적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대하여 입법자에게는 더욱 구체적인 입법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3) 헌법불합치 결정
종합하면, 헌법재판소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대해 어떠한 정량적 기준도 제시하고 있지 않은 현행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은 과소보호금지 원칙 및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어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만,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정한 2030년까지의 중장기 감축목표의 구체적인 비율에 대해서는 과소보호금지원칙 또는 법률유보원칙 위반으로 어렵고, 위 조항의 효력을 상실시킬 경우 그나마 존재하는 중간 목표마저 사라지게 되는 더욱 위헌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으며, 정부는 2026. 2. 28. 까지 개선입법을 추진할 의무를 부담합니다.
*헌법불합치 결정: 법적안정성을 위하여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도 후속 입법을 주문하며 당분간 효력을 유지시키는 것
4. 시사점
지난 2015년 네덜란드 지방법원으로부터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인정하고 감축 목표 상향을 명령한 이른바 우르헨다(Urgenda) 판결이 내려진 이래 세계 곳곳에서 기후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유사하게 헌법소원제도를 두고 있는 독일에서는 2021년 독일연방 헌법재판소가 기후변화법에 따른 독일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불충분하여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에 대한 판단으로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본 결정은 특히 ‘진전의 속도’를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합니다. 구체적으로, 헌법재판소는 감축목표를 비롯한 기후위기 대책이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만 의존할 경우,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감축노력을 미래세대로 미룰 가능성이 높고, 이는 결국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으므로 탄소감축이 적정한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률이 보루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결정이 내려지기 전부터 이미 국회 및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율을 대폭 확대하는 등 NDC 달성을 위하여 배출권거래제의 실효성을 제고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는데 이번 결정으로 인하여 정부의 기후대책 강화는 더욱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이번 결정에 따라 탄소중립기본법이 개정되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도 정해질 터인데 이러한 경우 제5차 계획기간(2031~2035)부터 관련 산업계는 이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정부의 기후대책은 국가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정부는 감축목표를 정하거나 기후대책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칠 것으로 예상되므로 산업계에서는 합리적인 기후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관련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English version] Korean Carbon Neutrality Act Ruled Unconstitutio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