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재에서의 기밀성(confidentiality)은 분쟁의 당사자들이 소송이 아닌 중재를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특히 기밀성은 영업비밀과 관련된 분쟁의 경우나 분쟁의 존재 및 관련 내용의 공개로 불이익이 예상되는 경우에 더욱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제중재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변호사, 중재인 및 사내변호사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 중 87%가 기밀성이 국제중재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답변하기도 하였습니다.1

그러나 국제중재에서 기밀성이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재절차에는 다양한 국가의 중재법 및 중재기관의 중재규칙이 적용될 수 있고, 각 중재법 및 중재규칙마다 기밀성을 다르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관련 중재법 또는 중재규칙에서 기밀성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경우 당사자들은 합의 등을 통하여 기밀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싱가포르 항소법원(Court of Appeal)은, 이미 중재절차에 관한 기밀성이 상실되었다는 이유로 중재기록에 대한 비공개 및 열람제한 신청(sealing application)을 기각하였는데, 이와 같이 법원이 중재절차의 기밀성을 보호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하여 주요 국가의 관련 규정을 면밀히 파악하여 국제중재에서의 기밀성 보호를 위해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뉴스레터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싱가포르 항소법원 판결 및 주요 국가의 기밀성 관련 규정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 The Republic of India v Deutsche Telekom AG [2023] SGCA(I) 4 판결

항소인은 인도 공화국(Republic of India, 이하 “인도”)으로 국영기업인 Antrix Corporation Ltd(이하 “Antrix”)을 소유하고 있었고, 피항소인은 Deutsche Telekom AG(이하 “DT”)으로 Devas Multimedia Private Limited(이하 “Devas”)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Antrix와 Devas는 위성 제작 및 임대계약을 체결하였으나 Antrix가 이를 해지하였습니다. 이에 DT는 Antrix의 계약 해지가 인도와 독일 사이의 양자투자협정(Agreement between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and the Republic of India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Investments)에 반한다고 주장하며 인도를 상대로 스위스에서 국제투자중재(ISDS)를 제기하였습니다. DT는 중재절차에서 유리한 판정을 받은 이후 싱가포르 법원에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신청하였고, 싱가포르 법원은 집행허가명령(ex parte Leave Order)을 내렸습니다.

인도 측에서 집행허가명령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 취소를 구하였는데,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Singapore International Commercial Court)은 이를 기각하였고, 인도 측에서 항소하면서, (i) 심리의 비공개 (ii) 항소심과 관련된 모든 정보, 문서의 비공개 및 항소심 기록의 열람제한 (iii) 당사자 비공개 및 (iv) 모든 공개되는 판결문 또는 결정문에서 기밀정보의 삭제 등 비공개 및 열람제한을 신청하였으나, 이 또한 기각되었습니다.

싱가포르 항소법원은, 재판공개가 원칙(principle of open justice)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비공개 및 열람제한 신청은 정의실현을 위하여 필요하거나 법령에서 요구하는 등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싱가포르 국제중재법(International Arbitration Act; 이하 “IAA”) 제22-23조2에는 중재와 관련된 법원 절차는 원칙적으로 비공개로 진행한다는 규정이 있으나, 이는 이 사건에서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항소법원은 IAA의 관련 규정이 중재의 기밀성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후속절차인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 단계나 취소 단계에서도 기밀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재절차 내에서 기밀성이 이미 상실된 경우에는 IAA를 더 이상 적용할 이유가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특히 항소법원은 (i) 이 사건 중재의 중간판정(interim award)과 최종판정(final award)이 이미 제3자 웹사이트에 공개된 점, (ii) 당해 중간판정이 스위스 연방 대법원에서 취소소송의 대상이었는데, 스위스 연방 대법원의 기각결정이 이미 공개된 점, (iii) 국제중재와 관련한 저명한 언론사인 Global Arbitration Review의 기사를 통해 중재 관련 당사자들이 알려진 점, (iv) 인도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SNS의 일종인 LinkedIn에서 싱가포르 집행절차를 공개한 점, (v) 미국, 독일 등 다른 국가에서의 DT의 집행절차가 공개된 점 등을 비공개 및 열람제한 신청의 기각사유로 설시하였습니다.

이외에 인도 측에서 싱가포르 법원 기록 등 관련 정보가 공개되면 제3자가 이를 인도의 평판을 훼손하기 위하여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항소법원은 재판공개 원칙은 법원 절차 내에서 이루어진 당사자들의 소송행위 등을 이해관계인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취지이기 때문에 인도가 주장한 사유는 당사자에게 특별히 불리한 사유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습니다.

 

2. 기밀성 관련 기타 국가의 규정 및 판례

가. 영국

영국의 경우 판례를 통해 국제중재에서의 기밀성을 중재합의의 묵시적 조건(implied term)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 중재법(Arbitration Act 1996)도 기밀성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나아가 영국 판례는 중재가 비공개로 진행되어야 하고, 양 당사자가 중재 관련 문서를 다른 목적으로 공개 또는 사용해서는 안 되며, 중재에서 증인이 제공한 진술을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묵시적 조건으로 보고 있습니다.3 다만, 법원이 정의 또는 중재 당사자의 정당한 이익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법원의 결정으로, 혹은 당사자들이 공개에 동의하는 경우 등에는 예외적으로 중재절차의 새부 사항을 공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국 판례는 법원 판결에 중요한 기밀 정보(significant confidential information)가 언급되지 않는 한 판결은 공개되어야 하며, 이미 분쟁 및 중재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진 경우 이를 공개하는 것은 ‘중요한 기밀 정보’의 공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4

한편 런던국제중재법원(London Court of International Arbitration, 이하 “LCIA”) 규칙에서는 원칙적으로 중재절차를 위해 작성된 모든 자료, 중재절차에서 다른 당사자가 작성한 문서 및 중재판정은 비밀로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5 그러나 이미 공개된 정보인 경우, 법적으로 공개가 요구되는 경우, 법적 권리 보호를 위한 경우 또는 법원에 중재판정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거나 집행을 구하기 위한 경우에는 예외가 적용됩니다.6

나. 홍콩

홍콩 중재법(Hong Kong Arbitration Ordinance (Cap. 609 of the Laws of Hong Kong), 이하 “HKAO”)에서는 당사자들은, 달리 합의하지 않는 한, 중재절차 또는 판정과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게시, 공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7 다만 (i) 당사자의 법적 권리 또는 이익을 보호하거나, 판정을 집행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기 위한 경우, (ii) 법적 의무에 따라 정부기관, 규제당국, 법원 또는 판정부에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 (iii) 전문가 또는 기타 조언자에게 공개하는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됩니다.8 또한, HKAO는 중재 관련 법원 절차는 비공개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당사자의 신청이 있거나 법원이 공개 법정에서 심리해야 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9

한편 홍콩국제중재센터(이하 “HKIAC”) 규칙에서는 당사자, 대리인, 중재인, 전문가, 증인 등이 중재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다만 HKAO에 규정된 것과 유사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10 또한 HKIAC 규칙에 따르면, 중재판정부는 중재절차 중에 공유, 저장 또는 처리되는 정보의 보안 유지를 위한 지시를 내릴 수 있으며, 정보 보안 조치 위반과 관련하여 당사자와 협의한 후 결정, 명령 또는 판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11

다. 한국

한국 중재법은 기밀성 원칙에 관하여 규정하지 않고 있어, 기밀성의 문제는 주로 당사자 간의 비밀유지약정(confidentiality agreement) 또는 중재판정부, 법원의 명령을 통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상사중재원(Korean Commercial Arbitration Board) 국제중재규칙 제57조에서는 중재절차 및 그 기록의 비공개 원칙과 그에 대한 예외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국제중재가 비밀 절차로 간주되고 있으며, 중재규칙 또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당사자들에게 비밀유지의무가 부과되고 있습니다.

라. 프랑스

프랑스 민사소송법(French Code of Civil Procedure, 이하 “FCCP”)은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지 않는 한 국내중재 절차는 비밀로 유지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12 그러나 국제중재 절차의 경우 FCCP에 기밀성 관련 규정이 없어 당사자 간에 합의가 있거나 중재판정부가 달리 명하지 않는 한 일반적으로 비밀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나, 다만 중재판정부의 심리(deliberations) 내용은 비밀로 유지됩니다.13 따라서 국제중재 절차에서 당사자의 서면이나 증거 등을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간 합의하거나 중재판정부에 특정 문서나 증거와 관련하여 비밀유지를 위한 절차적 명령을 내릴 것을 요청하여야 합니다.

한편, 국제상업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이하 “ICC”) 중재규칙에서는 기밀성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당사자가 요청하는 경우 중재판정부는 중재절차나 중재 관련 사항에 대해 비밀유지를 명할 수는 있습니다.14 이와 같이 FCCP나 ICC 중재규칙이 비밀유지의무를 규정하지 않는 이유는, 국제중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일반적인 추세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 중국

중국 중재법 제40조는 당사자가 달리 합의하지 않는 한 중재절차는 비공개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기밀성 원칙은 중재 관련 법원 절차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중국 민사소송법 제137조는 국가 기밀, 개인 사생활에 관한 사건이나 법률에서 달리 규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민사소송은 공개 법정에서 심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15 중재 관련 법원 절차에 대하여 법률에서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또한 중국 민사소송법 제159조는 대중은 법적 효력이 발생한 판결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재 관련 법원 절차 내지 판결은 일반적으로 기밀성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16 나아가 사례별로 당사자가 비공개 및 열람제한(sealing application)을 신청할 수 있기는 하지만 중재와 관련된 절차라는 이유만으로 판결의 비공개 신청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 중재법은 비밀유지의무에 대한 세부사항을 정하고 있지 않아 중국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CIETAC), 베이징중재위원회(BAC), 중국해사중재위원회(CMAC) 등의 기관 중재규칙이 이를 보충하고 있습니다. 각 기관의 중재규칙은 심리의 경우 원칙적으로 비공개로 진행하며, 양 당사자가 공개 심리를 요청하고 중재판정부가 동의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공개 심리를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3. 시사점

중재의 기밀성은 중재의 장점 중 하나로, 중요한 가치이지만 항상 보장되지 않습니다. 싱가포르 항소법원의 최근 판례와 같이 중재법에서 기밀성 유지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경우에도, 중재절차의 기밀성이 이미 상실되었다고 판단되면 다시 재판공개 원칙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중재에서 기밀성 유지를 위하여 관련 중재법이나 중재규칙을 면밀히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당사자 간 기밀성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등 중재 관련 자료의 공개를 방지하는 사전적 노력이 필요하며, 단순히 중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밀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전제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The Republic of India v Deutsche Telekom AG 사건과 같이 다양한 국가에서 집행 관련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 중재절차의 기밀성 유지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위 내용에 관하여 궁금하신 사항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신 경우 언제든지 연락하여 주시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상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Paul Friedland and Stavros Brekoulakis, 2018 International Arbitration Survey: The Evolution of International Arbitration (White & Case and 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Survey, 2018), pp. 3 and 24.
2 IAA, s 22 (titled “Proceedings to be heard in private”) reads: “(1) Subject to section (2), proceedings under this Act in any court are to be heard in private. (2) Proceedings under this Act in any court are to be heard in open court if the court, on its own motion or upon the application of any person (including a person who is not a party to the proceedings), so orders”. IAA, s 23 is titled “Restrictions on reporting of proceedings heard in private” and deals with court’s powers to give directions as to whether and if so, what information relating to the proceedings (heard in private) may be published, on application of any party to the proceedings.
3 Michael Wilson & Partners Ltd v Emmott [2008] EWCA Civ 184, para 105.
4 Manchester City Football Club Ltd v Football Association Premier League Ltd [2021] EWCA Civ 1110, para 11.
5 LCIA Arbitration Rules (2020), Article 30.1.
6 LCIA Arbitration Rules (2020), Article 30.1.
HKAO, Article 18(1).
8 HKAO, Article 18(2).
9 HKAO, Article 16.
10 HKIAC Administered Arbitration Rules (2024), Article 45.1 to 45.3.
11 HKIAC Administered Arbitration Rules (2024), 45A.3.
12 FCCP Article 1464.
13 FCCP Article 1479.
14 ICC Arbitration Rules (2021), Article 22(3).
15 Civil Procedure Law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Article 137.
16 Civil Procedure Law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Article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