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금지명령(Anti-Suit Injunction)은 국제적 분쟁에 있어서 부당한 외국제소에 대항하기 위한 적극적선〮제적 구제수단으로 영미법계 국가에서 많이 이용되는 제도입니다. 소송금지명령은 중재 또는 전속적 국제재판관할 합의와 같은 분쟁해결 합의가 있는 경우에 특히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최근에 싱가포르 국제상업법원(Singapore International Commercial Court) 및 항소법원(Singapore Court of Appeal)에서, 중재합의의 당사자가 아닌 비계약당사자(non-parties) 등을 상대로 제기된 외국 소송(한국 소송)에 대하여 소송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가 주목할 만한 쟁점이 된 바 있었습니다.1 그 외국 소송의 피고인들은 중재합의의 당사자는 아니었으나 그 소송의 주요 쟁점들은 대부분 이미 진행된 중재절차에서 다루어진 것들이었습니다.

동 사안에서 싱가포르 항소법원은 비계약당사자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금지할 수 있는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요건을 제시하였습니다:

  • (1) 중재조항의 해석: 합의된 중재조항(또는 전속관할 조항)이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비계약당사자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
  • (2) 제소의 목적: 비계약당사자에 대한 별개의 외국 소송이 부당하고 억압적인 목적으로 신의칙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

해당 사안의 경우 싱가포르 항소법원은 소송금지명령을 내린 하급심을 파기하면서, (i) 중재합의의 적용 범위를 상대적으로 좁게 해석하여 당해 외국 소송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고 또 (ii) 당해 외국 소송 또한 신의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싱가포르 항소법원은 특히 외국 소송과 관련하여 해당 소송의 패소 가능성, 관련 쟁점이 중재에서 이미 다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였습니다.

싱가포르 항소법원은 비계약당사자를 위한 소송금지명령과 관련하여 영국 상원(House of Lords) 판결2 (이하 “Donohue 판결”)도 함께 고려하였습니다. 동 사안에서는 Armco Group과 Roger Donohue 등 사이에 체결된 계약에 영국법원을 전속관할로 하는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Armco Group이 Roger Donohue뿐만 아니라, 비계약당사자인 Armco Group의 전 임원들 등을 상대로 사기 등을 이유로 뉴욕에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동 소송의 피고들은 뉴욕과 영국으로 나누어져 소송이 진행될 경우 초래되는 비효율성 내지 결과의 상충 가능성 등 관할의 파편화에 따른 문제들을 이유로 영국 법원에 소송금지명령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영국 상원은 뉴욕 소송 원고들의 일부 클레임은 뉴욕 법원에서만 다룰 수 있는데 소송금지명령을 내리면 당해 클레임은 구제를 받을 수 없다는 점, 뉴욕 소송의 당사자들간에 체결된 다른 관련 계약들에서는 영국 법원에 배타적 관할권을 부여하는 조항이 없으므로 뉴욕 소송 전부를 금지할 수 없으며 이러한 경우 관할의 파편화는 피할 수 없다는 점, 나아가 당시에 Armco Group이 위 전속관할 조항의 혜택을 상실할 수 있는 당사자인 Roger Donohue 등을 상대로 재차 영국 법원에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제공하였다는 점 등을 이유로 소송금지명령을 내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싱가포르 항소법원은 국제중재의 관점에서는 관할 파편화는 당사자들의 중재합의에 수반되는 내재된 위험이기 때문에 이를 과도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당사자가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외국 법원에 대한 소제기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국제분쟁에서는 순수 국내 사건의 경우보다 어느 국가에 소송을 제기하는지에 따라 소요되는 비용과 기간이 다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송의 결과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거래의 당사자로서 어느 법원에서 분쟁이 해결되는지에 큰 이해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소송금지명령은 절차지연이나 상대방 압박 등과 같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일방 당사자의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상대방 당사자를 보호할 수 있는 구제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영미법계 국가에서 법원에 의한 소송금지명령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서 대부분 소송금지명령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부당한 관할에 기인한 판결의 승인 및 집행을 허용하지 않거나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는 방법으로 해결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중재합의시 중재지를 어느 국가로 지정하느냐에 따라 소송금지명령의 활용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중재합의가 있는 경우 소송금지명령은 통상적으로 중재지 법원에 신청하게 되는데, 대륙법계 국가뿐만 아니라 같은 영미법계 국가인 영국 및 싱가포르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접근방식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위 내용에 관하여 궁금하신 사항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신 경우 언제든지 연락하여 주시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상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Asiana Airlines, Inc v Gate Gourmet Korea Co, Ltd and others [2023] SGHC(I) 23 및 Asiana Airlines, Inc v Gate Gourmet Korea Co, Ltd and others [2024] SGCA(I) 8.
2 Donohue v Armco Inc and others [2002] 1 All ER 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