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안의 개요 및 쟁점
본건은 시공사인 원고가 신탁회사인 피고를 상대로 공사대금의 지급을 구한 사건으로, 원·피고가 함께 관여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신탁사업(이하 각 ‘A 사업’, ‘B사업’)에서 각각 발생한 채권과 채무를 상계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음.
① A 사업(시공사의 신탁회사에 대한 공사대금 채권이 발생한 사업): A 사업은 공동주택을 신축하기 위한 ‘책임준공관리형 토지신탁사업’으로, 원고는 시공사로서 책임준공의무를 부담하고 피고는 신탁회사로서 사업시행자의 도급인의 지위를 승계하였음. 이에 따라 원고는 피고에게 공사대금 채권을 취득하게 되었음.
② B 사업(신탁회사의 시공사에 대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채권이 발생한 사업): 공동주택, 업무시설 및 근린생활시설을 신축하는 B 사업은 A 사업과는 별개로 진행된 또다른 ‘책임준공관리형 토지신탁사업’으로, 원고는 시공사로서 책임준공의무를 부담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한 채 회생절차를 밟았음. 이후 신탁회사인 피고가 고유재산에서 공사비 등 비용(이른바 ‘신탁계정대’)을 투입하여 사업을 준공하였음. B 사업 신탁계약서 특약사항은 시공사의 누적 실행공정률이 계획공정률에 일정 비율 이상 미달하는 경우 시공사가 공사비의 10%에 해당하는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을 피고 명의의 별도 예금계좌에 납부하고, 시공사가 책임준공의무를 종국적으로 이행하지 못하는 등 귀속사유가 발생하면 위 보증금이 피고에게 귀속되도록 정하고 있었음.
시공사인 원고가 A 사업의 공사대금을 신탁회사인 피고에게 청구한 사건에서, 피고는 원고의 회생절차에서 B사업에서 본인에게 귀속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A 사업의 공사대금 채무를 대등액에서 상계하였다고 항변하였음. 이에 대하여 원고는 자동채권인 공사지연 손해보증금 채권은 B 사업의 '신탁재산'에 해당하므로, 신탁재산에 속하는 채권으로 신탁재산에 속하지 않는 채무를 상계하는 것을 금지한 신탁법 제25조 제1항 본문1에 따라 위 상계가 허용될 수 없다고 다투었음.
결국 본건은 「피고가 자동채권으로 삼은 공사지연 손해보증금 채권이 B 사업의 신탁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으로 귀결되었음.
2. 법무법인(유) 세종의 대응
B 사업 신탁계약서 제6조 제7호는 “신탁사업과 관련하여 수취한 계약보증금(공사지연 손해보증금 포함)”을 신탁재산의 하나로 열거하고 있었음. 즉 신탁계약서의 문언만을 놓고 보면 자동채권이 B 사업의 신탁재산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였고, 이는 상계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피고에게는 현저히 불리한 사실관계였음.
법무법인(유) 세종은 신탁회사인 피고를 대리하여 「피고에게 귀속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 채권은 신탁계약의 문언에도 불구하고 신탁재산이 아니라 피고의 고유재산에 해당하므로, 이를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는 신탁법 제25조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아래와 같이 논증하였음.
신탁계약 문언의 합리적 해석 - 제6조 제7호의 '수취'는 '납부'를 의미함
먼저, B사업 신탁계약서 특약사항 제8-1조가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의 '납부'(제1항)와 '귀속'(제2항)을 그 사유와 효과를 달리하여 규정하고 있는 점에 착안하였음. 즉 제1항에 따라 일단 '납부'된 손해보증금은 납부사유가 해소되면 시공사에 반환되는 반면, 시공사가 책임준공의무를 종국적으로 이행하지 못하여 제2항에 따라 피고에게 '귀속'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은 반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자는 본질적으로 구별됨. 이를 토대로 B사업 신탁계약서 제6조 제7호가 신탁재산으로 정한 ‘신탁사업과 관련하여 수취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에서 '수취'란 제1항에 따라 시공사가 피고에게 '납부'한 손해보증금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 해석함이 타당하고, 제2항에 따라 피고에게 '귀속'된 손해보증금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하였음. 계약서는 그 문언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관련 조항을 포함한 계약 전체의 취지 및 조항 상호 간의 유기적 관련성을 종합하여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하는데, 위와 같이 해석하여야만 귀속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을 피고가 자유롭게 사용·충당하도록 정한 제8-1조 제2항의 취지와 모순 없이 조화될 수 있기 때문임.
귀속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의 고유재산성
나아가 위와 같이 피고에게 '귀속'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은 '납부'된 손해보증금과 달리 원고(시공사)가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함으로 인하여 피고가 고유재산으로 부담하게 된 손해 내지 비용을 전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신탁재산과는 구분되는 피고의 고유재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음. 구체적으로 (i) 신탁회사인 피고가 일반적인 관리형 토지신탁과 달리 책임준공의무를 부담하고 그 책임의 범위가 신탁재산으로 제한되지 않는 점, (ii) 귀속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은 신탁계좌가 아닌 피고 명의의 별도 예금계좌로 관리되는 점, (iii) 처분의 순서와 방법이 엄격히 정해진 신탁재산과 달리 피고에게 귀속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은 피고가 자유롭게 사용·충당할 수 있고 수익자는 그 사용 방법에 대하여 일체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음.
상계의 적법성 - 신탁법 제25조 제1항 위반 여부 및 구체적 타당성
끝으로 위와 같이 상계의 자동채권인 공사지연 손해보증금 채권이 애초에 신탁재산에 속하지 않는 이상, 신탁재산에 속하는 채권으로 신탁재산에 속하지 않는 채무를 상계하는 것을 금지한 신탁법 제25조 제1항 본문은 적용될 여지가 없다는 점을 주장하였음. 나아가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도 피고의 상계를 허용하지 아니한다면 신탁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의무와 책임을 부담할 뿐인 신탁회사로 하여금 종국적으로 자신의 고유재산으로 공사를 진행, 완성하도록 하는 부당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주장하였음.
3. 소송경과 및 판결의 결론
법원은 2025. 4. 9. 법무법인(유) 세종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음. 법원은 ㉠ 신탁계약 특약사항 제8-1조가 손해보증금의 '납부'(제1항)와 '귀속'(제2항)을 그 사유와 효과를 달리 정하고 있는 점, ㉡ 특히 제2항에 따라 피고에게 귀속된 손해보증금은 제1항의 납부사유만이 발생하였을 때와 달리 더 이상 원고에게 반환되지 않고, 처분의 순서·방법이 정해진 신탁재산과 달리 피고가 이를 자유롭게 사용·충당할 수 있으며 수익자는 이에 일체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위 귀속된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은 시공사의 책임준공의무 불이행으로 피고가 고유재산으로 부담하게 된 손해 내지 비용을 전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신탁재산과 구분되는 피고의 고유재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음. 이에 따라 법원은 피고의 상계가 신탁법 제25조 제1항 본문의 상계금지 규정에 저촉되지 않고 적법하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음.
4. 본건의 의의 및 시사점
본건은 신탁계약서에 규정된 각종 보증금이 문언상으로는 신탁재산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해당 보증금이 마련된 취지와 그 관리·처분 방식 등 실질을 보았을 때 신탁재산이 아닌 고유재산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음.
또한 본건은 책임준공의무를 부담하는 신탁회사가 고유재산을 투입하여 시공사를 대신하여 사업을 완성한 경우, 그 출연한 비용을 신탁계약상의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을 통해 시공사로부터 실효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길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실무상 의미가 큼.
다만 본건에서 신탁계약 제6조 제7호가 공사지연 손해보증금을 신탁재산으로 포괄적으로 명시하고 있었던 탓에 위 보증금이 신탁재산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었음.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신탁계약서를 작성하는 단계에서부터 신탁회사의 이익을 위한 보증금 등은 신탁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언상 명확히 정리해 두는 것이 분쟁을 예방하는 길임을 시사함. 본건은 향후 유사한 사실관계의 부동산PF, 신탁 관련 분쟁에서 유용한 선례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됨.
1 신탁법 제25조(상계금지) ① 신탁재산에 속하는 채권과 신탁재산에 속하지 아니하는 채무는 상계(相計)하지 못한다. 다만 양 채권·채무가 동일한 재산에 속하지 아니함에 대하여 제3자가 선의이며 과실이 없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