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유) 세종 기업금융분쟁그룹 도산팀 김동규 변호사입니다. 2003년부터 2024년까지 20여 년을 판사로 재직하면서 서울회생법원 등에서 회생 및 파산 사건을 담당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12회에 걸쳐 도산절차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오늘은 여덟 번째로 ‘도산해지조항과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 확정’에 관하여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8호. 도산해지조항과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 확정
이번에도 사례를 가지고 설명 드리려 합니다.
① A회사는 B회사로부터 B회사 소유 건물을 임차한 후 보증금과 월차임을 지급하면서 그 건물을 사용하였는데, 임대차계약 당시 A회사의 지급정지, 회생절차 개시신청, 파산신청 등이 있으면 B회사가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약정하였습니다. ② A회사는 C회사로부터 물품을 공급받으면서, 물품대금을 담보하기 위하여 C회사에게 A회사 소유 토지에 대한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A회사는 경영이 악화되자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하여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았습니다. A회사는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은 후에도 B회사 소유 건물을 사용하고 있고, C회사로부터 물품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위 각 사례에서 B회사는 위 약정에 따라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C회사가 회생절차 개시결정 후 A회사에 공급한 물품의 대금채권도 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에 포함되는 것일까요? 위 각 사례가 바로 도산해지조항,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 확정과 관련된 것입니다.
계약 당사자가 계약을 체결할 때, 일방의 재산상태 악화를 대비하여 일방의 지급정지, 회생절차 개시신청, 파산신청 등의 사실이 발생하면, 상대방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거나 계약의 당연해지 사유로 삼는 조항을 넣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그러한 조항을 ‘도산해지조항’이라고 합니다.
계약 당사자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재산상태가 악화되는데도 계약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불안하기 때문에 계약에 도산해지조항을 넣게 되는데, 계약 목적물이 고가이거나 계약 규모가 클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인정할 경우, 재정적 위기 상태에 빠진 채무자가 재기를 위하여 한 회생절차 개시신청이 오히려 재기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형국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함으로써 도산해지조항에 따라 바로 재기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계약 목적물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계약이 더 이상 효력이 없게 되어 사업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하여 여러 견해가 대립하지만,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부정하는 견해가 대세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회생절차의 목적과 취지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도산해지조항을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의 경우에는 계약의 이행이나 해제 또는 해지에 관한 관리인의 선택권을 부여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부정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다38263 판결 참조). 여기서 말하는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에서의 관리인의 선택권’은 제4호에서 이미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결국 대법원도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에 관한 한은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채무자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채무자 재산에 설정된 근저당권에 의하여 담보되는 피담보채권이 확정되는지에 대해서도 견해가 대립합니다. 그렇지만 회생절차개시에 의하여 채무자 사업의 경영 및 재산의 관리처분권이 관리인에게 전속되고, 이때를 기준으로 법률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간다는 점을 중시하여 회생절차 개시결정으로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은 확정된다고 보는 확정설이 주류입니다.
대법원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기준으로 확정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그 이후의 거래관계에서 발생한 채권은 근저당권에 의하여 담보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제 위 예로 돌아가 살펴봅니다. 먼저 위 ①의 예에서, 임차인인 A회사에게는 임대인에게 월차임을 지급하고 임대차기간 종료 시에 임대인에게 목적물인 건물을 인도하여 반환할 의무가 남아 있고, 임대인인 B회사에게는 임대차기간 종료 시까지 임차인이 목적물을 계속하여 사용하게 해 줄 의무가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위 임대차계약은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인 관계로 위와 같은 도산해지조항의 효력이 부정되어 B회사는 A회사와의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위 ②의 예에서, A회사의 회생절차 개시결정으로 그 시점에 위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은 확정되므로, C회사가 회생절차 개시결정 후 A회사에게 공급한 물품의 대금채권은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대금채권의 경우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79조 제1항 제2호의 ‘회생절차 개시 후의 채무자의 업무 및 재산의 관리와 처분에 관한 비용청구권’으로서 공익채권에 해당할 수는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회생절차를 포함한 도산절차에서는 그 절차와 도산 관련 규정의 취지를 중시하여 계약 당사자 사이의 계약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지는 않는 경우가 있다는 걸 명심하셔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