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인도는 차세대 글로벌 성장 시장으로 주목받으며, 한국 기업을 포함한 전 세계 기업들이 인도 시장에 진출하여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만큼, 인도는 풍부한 인재풀을 갖추고 있어, 한국 기업에게 다양한 인재 채용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인도에 진출한 많은 한국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바로 인력 확보 및 유지 문제입니다. 특히, 핵심 인력의 조기 퇴사—즉, 주요 직책을 맡은 직원이 별다른 사전 통지나 인수인계 없이 퇴사하는 상황—은 심각한 경영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핵심 직책에 인도 현지인을 임명하였으나 수개월 또는 수년 근무 후 갑작스럽게 퇴사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일반 사무직 직원이나 생산직 근로자 등 다양한 직군에서도 나타나며, 후속 인력이 제때 충원되지 못할 경우 기업 운영 전반에 지장을 초래하고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퇴사의 사유는 한국식 경영 방식에 대한 적응 실패, 타사로부터의 더 나은 조건 제안 등 다양하며, 특히 경쟁사나 인도 내 타 한국계 기업으로의 이직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이를 방지하고자 일부 기업은 근로계약서에 최소 근무 기간 조항을 삽입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를 집행하는 데에는 법적·실무적 한계가 있습니다. 퇴사한 직원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더라도, 인도 계약법(Indian Contract Act, 1872) 제27조(영업 자유 제한 계약 무효) 및 헌법(Constitution of India, 1950) 제19조 제1항 (g호)(시민의 직업 선택의 자유 보장)을 근거로 한 반론에 부딪혀 실효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최근 인도 대법원은 Vijaya Bank and Another v. Prashant B Narnaware 사건(2025 SCC OnLine 1107)을 통해, 유사한 상황에 놓인 사용자에게 일정한 법적 보호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본 판결은 인도 내 한국 기업들이 예고 없는 퇴사에 대비한 근로계약 구조를 설계할 때 참고할 만한 실질적인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II. 인도 노동법상 최소 통지 의무
인도 노동법령은 직원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령은 주로 근로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사용자에게만 최소 통지 기간을 부여할 의무를 부과할 뿐, 근로자 측에 대해 동일한 통지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산업분쟁법(Industrial Disputes Act, 1947) 제25F조에 따르면, 공장 근로자나 산업 현장 종사자(이른바 블루칼라 근로자)의 경우, 1년 이상 계속 근무한 근로자를 해고(retrenchment)하려면 최소 1개월 전 사전 통지를 해야 하며, 해고 보상금도 지급해야 합니다. 반면, 근로자가 자진 사직(resignation)하는 경우에는 사전 통지 의무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사무직 근로자(소위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경우에는 각 주별 상점 및 영업소법(Shops and Establishments Acts)이 적용되며, 이에 따라 사용자 보호 수준이 주마다 상이하게 규정되어 있고, 통일된 기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델리의 경우, 델리 상점 및 영업소법(Delhi Shops and Establishments Act, 1954) 제30조 제2항은, 3개월 이상 계속 근무한 직원은 1개월 전 서면 통지 없이 퇴사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1개월분 급여를 통지 미이행에 대한 대가로 사용자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일정 수준의 보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반면, 구루그람(Gurugram) 또는 하리아나(Haryana)의 다른 지역에서 운영 중인 기업의 경우, 훨씬 낮은 수준의 보호를 받습니다. 펀자브 상점 및 상업영업소법(Punjab Shops and Commercial Establishments Act, 1958)(하리아나주에 준용) 제23조 제1항은, 3개월 이상 계속 근무한 직원은 7일 전 통지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7일분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퇴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에서는 이를 위반할 경우 사용자가 최대 7일분의 미지급 임금을 몰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위치한 첸나이(Chennai) 및 타밀나두(Tamil Nadu) 지역의 경우, 타밀나두 상점 및 영업소법(Tamil Nadu Shops and Establishments Act, 1947) 제41조는 6개월 이상 계속 근무한 직원을 해고할 경우 사용자에게만 1개월 전 통지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근로자의 사직에 대해서는 사전 통지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인도 노동법령은 근로자의 예고 없는 퇴사에 대해 사용자 측을 실질적으로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계약서에 사전 통지 의무나 손해배상 관련 조항을 포함하여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조항이 과도한 제한으로 해석될 경우 인도 법원에서 무효로 판단될 위험이 있으므로, 그 목적이 무력화되지 않도록 신중한 설계가 요구됩니다.
III. Vijaya Bank 판결 요지
본 사건의 피고 직원은 Vijaya Bank에 1999년 입사하였고, 2007년 정규직으로 임용되면서, 임용일로부터 3년 이내에 퇴사할 경우 2,00,000루피를 은행에 배상해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된 보증약정서에 서명하였습니다. 그는 2009년 퇴사하면서 이의를 유보한 상태에서 해당 금액을 납부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인도 헌법 제14조(평등권) 및 제19조 제1항(g호)(시민의 직업 선택의 자유), 그리고 인도 계약법 제23조 및 제27조(불공정 계약 및 영업 제한 조항 무효)에 위반된다는 주장을 근거로 하여, 고등법원에 위헌심사형 헌법소원(Writ Petition)을 제기하였습니다.
고등법원 단독판사는 KY Venkatesh Kumar v. BEML Limited 사건(WA No. 2736 of 2009)을 인용하여 그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항소심 재판부 역시 해당 결정을 유지하였습니다. 이에 회사는 인도 대법원에 상고하였습니다.
대법원은 먼저 영업 제한 계약에 관한 기존 판례들을 근거로, 근로자가 재직 중 다른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소극적 약정(negative covenant)이 존재하지 않는 한, 재직 기간 내에서의 제한 조항은 인도 계약법 제27조가 금지하는 '영업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본 사건의 경우 피고는 단지 정해진 기간 내에 퇴사할 경우 손해배상금을 부담하도록 되어 있었고, 이 조항은 그의 향후 직업 선택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상 조건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므로, 제27조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울러, 대법원은 해당 제한 조항이 공공질서에 반하는지 여부도 함께 검토하였습니다. 대법원은 공공질서(public policy)는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며 시대에 따라 해석이 변화할 수 있는 개념임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고용관계의 맥락에서는 기술 발전, 직무 변화, 재교육의 중요성, 특수 인력의 보호 필요성과 같은 요소들도 함께 고려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이 사건 직원의 퇴사로 인해 발생한 공석을 메우기 위해 회사가 신규 채용을 다시 진행해야 했다는 점을 근거로, 2,00,000루피의 예정 손해배상액 부과는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해당 제한 조항들이 영업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지 않고, 공공질서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며, 조항의 유효성과 손해배상액 부과의 정당성을 모두 인정하였습니다.
IV. 한국 기업을 위한 시사점
본 사건의 사실관계가 한국 기업의 운영 현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번 판결은 인도 내 한국 기업들에게 실무적으로 적용 가능한 여러 시사점을 제시합니다.
첫째, 해당 사건의 피고 기업은 공공기관(public sector undertaking)이었으나, 한국 기업은 대부분 민간기업으로서 임의 채용(ad-hoc hiring)과 같은 유연한 인사운영이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 판결은 예고 없이 이루어지는 직원의 조기 퇴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계약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보증약정서(Indemnity Bond)나 예정 손해배상 조항(Liquidated Damages Clause)은 핵심 인력이 일정 기간 내에 퇴사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일반적인 통지기간 조항은 마지막 급여의 일부를 유보하는 데 그치지만, 보증약정서는 해당 금액이 지급되지 않으면 퇴사가 유효하지 않도록 명시할 수 있으며, 지급 거부 시 소송 등을 통해 법적 회수가 가능합니다.
다만, 이러한 약정이 유효 하려면 해당 금액이 직원의 직책과 대체 비용에 비례해야 하며, 과도할 경우 위법·무효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낮은 금액은 실효성 있는 퇴사 방지 효과나 보상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근로계약서에 삽입되는 제한조항(Restrictive Covenant)은 일반적으로 재직 중에만 적용되도록 하고, 퇴직 이후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될 경우 집행불능 판정을 받을 수 있으므로, 기간·지역적 범위 측면에서 합리적인 수준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즉, 갑작스러운 퇴사를 완전히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은 없지만, 통지기간 조항, 보증약정서, 예정 손해배상 조항 등을 전략적으로 설계·활용함으로써 그 빈도와 피해를 줄이고, 실제 발생 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 본 뉴스레터는 노사발전재단과 공동으로 발간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