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북극항로의 부상

러시아가 주도하는 북극항로(Northern Sea Route, NSR)는 단순한 해상 항로가 아니라 세계 물류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전략적 회랑으로 부상했습니다. 기후변화로 해빙이 가속화되고 러시아의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과거 제한적으로만 활용되던 북극항로가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2021년 수에즈 운하 봉쇄 사태는 글로벌 물류망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컨테이너선 좌초로 운항이 중단되자, 아시아-유럽 교역이 큰 차질을 빚었고, 이는 북극항로와 같은 대체 운송 경로의 필요성을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5년 들어 미·러 정상회담과 미·한 정상회담 등에서도 북극항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습니다. 북극항로는 러시아의 국내 프로젝트를 넘어, 국제 정치·글로벌 무역·에너지 안보가 교차하는 복합적 이슈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도 「북극항로 구축 지원 특별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되며,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 거점항만 지정, 북극전략펀드 조성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는 북극항로가 단순한 국제 해상 경로를 넘어, 한국의 정책·산업 전략에도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국회 차원의 입법 논의와 더불어, 지자체의 거점항만 육성 전략, 연구기관의 정책 제안까지 다층적인 대응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어, 북극항로 논의가 국가적 차원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본 뉴스레터에서는 러시아의 발전 전략, 법적 규제 체계, 경제적 성과, 한국의 제도·정책 환경, 한국 기업의 기회와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Ⅱ. 러시아의 북극항로 발전 전략

러시아 정부는 「2035년까지의 북극항로 발전계획」을 통해 단계별 물동량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2024년 목표치였던 8천만 톤은 실제 8천3백만 톤으로 초과 달성되었으며, 2030년 1억 5천만 톤, 2035년 2억 2천만 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극항로가 단순한 항로를 넘어 국가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계획에는 15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포함되어 있으며, 사베타·인디가·우스트-렌가 등 항만 건설, 원자력 쇄빙선 9척 포함 최소 40척 확보, 북극횡단철도 건설, 통신·항법 위성 배치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연중 항행 안정성을 높이고, 자원 수출과 극동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북극횡단철도 건설은 자원지대와 항만을 연결해 내륙과 해상을 잇는 물류망을 구축하려는 핵심 시도입니다. 이는 러시아가 북극항로를 단순한 운송로가 아니라 지역 개발과 국가 안보 전략이 결합된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도 접점을 형성할 수 있어, 중러 협력의 새로운 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러시아는 국제 제재 상황에서 기술 자립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3년 제정된 대통령령에서는 북극항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기술과 장비의 80% 이상을 2030년까지 국산화하겠다고 규정했습니다. 다만 쇄빙 LNG선 건조, 위성 기반 항법 지원, 영구동토 모니터링 등은 러시아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분야로, 한국·중국 등 외국과의 기술 협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러시아 국영 원자력 공기업 로사톰(ROSATOM)은 2018년 대통령령에 따라 북극항로 관리 권한을 부여받았으며, 산하에 북극항로총국(NSR GENERAL ADMINISTRATION)을 설치하여 운항 허가 발급, 쇄빙 서비스 운영, 항행 지원 전반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로사톰은 세계 유일의 원자력 쇄빙선 운영 주체라는 점에서, 단순한 에너지 공기업을 넘어 국가 안보와 북극 개발 전략의 핵심 기관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한국수력원자력(KHNP)과 유사한 구조적 위상을 지니지만, 해상 운송과 국가 전략이 직접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Ⅲ. 법적 규제와 제도적 장치

북극항로는 러시아 국내 법령에 의해 규율되고 있습니다. 2012년 연방법 제132-FZ호는 북극항로를 ‘역사적으로 형성된 국가 운송 회랑’으로 규정하며, 운항 허가제, 쇄빙 및 도선 서비스, 항행 지원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현재 운항 허가는 로사톰 산하 기관이 발급하며, 유효 기간은 최대 1년입니다. 운항 허가 신청 시 극지운항선박인증서(Polar Ship Certificate), 환경배상보험, 쇄빙 계약을 반드시 제출해야 합니다.

2020년 정부령 №1487호는 운항 규칙을 세부적으로 규정하며 전자 신청 시스템과 허가 절차를 공식화했습니다. 2019년 정부령 №341호는 외국 선박의 반복적인 국경 통과 절차를 간소화했지만, 동시에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사전 통보와 자동 위치 보고 장치 설치를 의무화해 보안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외국 선박은 출항 최소 24시간 전 FSB에 선박 정보, 항로, 선원·화물 명단을 제출해야 하며, 운항 중에는 자동 위치 보고 장치를 통해 실시간 항적을 송신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러시아 당국은 운항 중지, 억류, 벌금 부과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극지규범(Polar Code)와 러시아 규제 간의 불일치 문제도 존재합니다. IMO의 Polar Code는 환경 보호와 안전 항해 기준을 강조하지만, 러시아 규제는 안보·통제 측면을 중시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 기업은 국제 규범과 러시아법을 모두 준수해야 하므로, 복합적인 법적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IMO Polar Code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러시아 규정 위반 소지가 발생할 수 있어, 실제 운항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제재나 운항 중단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Ⅳ. 경제적 성과와 물동량 추세

북극항로의 물동량은 최근 급성장했습니다. 2020년 3천3백만 톤에서 2024년 8천3백만 톤으로 2.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설정한 목표를 초과 달성한 성과로, 북극항로의 경제적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품목별로는 LNG가 전체의 약 60%를 차지하며, 석탄 1천만 톤 이상, 금속광석·원유 등 기타 자원이 나머지를 차지했습니다. LNG의 비중이 여전히 높지만, 석탄·광물 수송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항로의 다품목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 운송 역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 물동량은 19만3천800TEU로 전년 대비 17.7% 증가했으며, 이는 북극항로가 에너지 중심 루트에서 일반 물류 항로로 기능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향후 유럽-아시아 간 컨테이너 물류 경쟁에서 일정한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부산 구간 항해 기간은 수에즈 운하를 경유할 때보다 약 14일 단축됩니다. 하지만  계절적 제약과 높은 쇄빙 비용 때문에 상업적 경쟁력은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Ⅴ. 한국 기업의 기회와 도전

한국 조선업은 야말 LNG 프로젝트에서 Arc7급 쇄빙 LNG선 15척을 건조하며 세계적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는 한국 조선소가 극지 선박 분야에서 확고한 경쟁우위를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러시아가 2030년까지 내빙 선박 160척을 확보할 계획인 만큼, 제재 완화 시 한국 기업의 참여 기회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부산·울산 항만은 이미 북극항로 환적·보급의 주요 거점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2024년 환적 물동량이 300만 톤을 초과하면서, 한국이 동북아 북극항로의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확인되었습니다. 앞으로 보급·급유·수리 서비스 확대와 항만 인프라 개선이 병행된다면, 한국 항만은 북극항로 운영의 핵심 노드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자원 분야에서도 기회 요인이 존재합니다. 북극 지역은 LNG·원유·희토류 등 전략 자원의 보고로, 한국은 이를 통해 에너지 수입 다변화와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특히 희토류와 같은 핵심 광물은 반도체·배터리 산업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으로서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북극 지역 개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2022년 이후 국제 제재로 대부분의 신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습니다. 보험·재보험 비용의 상승, 러시아와 국제사회 간 법적 해석 차이, 환경 규제 강화, 영구동토 붕괴 등은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의 진출은 단순한 상업적 접근을 넘어, 법적·정책적 리스크 관리 체계와 시나리오별 전략 수립이 필수적입니다.

한편 국내에서도 정책적 대응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KMI 동향분석 보고서는 「극지활동진흥법」과 「북극항로 구축 지원 특별법」 논의, 북극전략펀드 설립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으며, 경상북도는 영일만항을 북극항로 거점항으로 육성하기 위해 북극항로추진팀을 신설하고, 항만·도로 인프라 확충과 전문 인력 양성에 나섰습니다. 또한 김정재 의원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 거점항만 지정, 북극해운정보센터·북극대학원 설립, 5년 단위 기본계획 수립을 담은 특별법을 발의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앙정부·지방정부·국회 차원에서 북극항로 활용 기반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려는 시도로 평가됩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경제성이 여전히 의문이라는 시각도 제기됩니다. 국내에는 쇄빙 화물선이 부재하며, 외국산 선박 확보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또한 지역 간 거점항만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정책의 효율성이 저해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은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업계의 현실적 우려를 균형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Ⅵ. 결론 및 시사점

북극항로는 러시아의 전략적 자산이자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좌우할 핵심 경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은 조선·물류·에너지 분야에서 경쟁력을 입증했지만, 제재와 규제라는 복합적 제약 요인에 직면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환적·보급 등 제재 부담이 적은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중장기적으로는 제재 완화, 환경 규제 강화, 중러 협력 심화 등 다양한 시나리오별 전략이 필요합니다. 제재가 완화되면 조선·에너지 프로젝트 참여가 가능해지고, 환경 규제가 강화될 경우 친환경 선박 기술과 탄소 저감 솔루션이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내부의 법적·제도적 기반 강화는 기업 진출의 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특별법 제정, 북극전략펀드 조성, 거점항만 육성 등은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적 안전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업계의 현실적 비용 부담과 기술적 제약이 병존하기 때문에, 정부 지원과 민간 역량을 결합한 다층적 전략이 요구됩니다.


법무법인(유) 세종은 러시아 및 북극 규제와 국제 제재 대응 경험, 현지 파트너십 역량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의 북극항로 진출과 리스크 관리에 최적화된 자문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