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일부 변제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곧바로 시효이익 포기로 추정할 수는 없으며, 변제 동기·경위 등 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여 종전 판례를 변경한 사례]

 

1. 사안

원고는 피고로부터 4차례에 걸쳐 총 2억 4,000만 원을 차용함. 그 중 제1, 2차 차용금의 이자채권에 관하여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에서, 원고는 피고에게 그 중 1,800만 원을 일부 변제함.  이후 원고 소유의 부동산이 임의경매에 부쳐지면서 배당절차가 진행되었고, 원고는 배당표상 피고의 배당액이 실제 원고에 대한 원리금채권을 초과한다고 주장하며 배당이의 소를 제기함.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채무자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에서 일부 변제를 한 경우, 이를 시효이익의 포기로 추정할 수 있는가’였음.  배당이의 소는 배당표의 작성이 위법함을 이유로 경정을 구하는 소송으로, 이 사건에서는 이자채권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 및 시효이익 포기의 법리가 배당절차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었음. 

 

2. 법원의 판단

가. 원심의 판단

원심(인천지방법원 2023. 4. 28. 선고 2021나64385 판결)은 종전 대법원 판례의 입장을 그대로 원용함.  즉, 원심은 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3다12464 판결 등 일관된 판례에 따라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거나 일부 변제를 한 경우에는, 그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법리를 적용하여, 원고가 일부 변제를 한 사실만으로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보아, 소멸시효 완성에 관한 원고의 주장을 배척함.

나. 대법원의 판단(원심판결 파기환송)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아래와 같은 점을 설시하면서 종전 판례 법리를 변경하며 원심을 파기환송함.

① 먼저 대법원은, ‘시효이익의 포기’가 단순히 채무의 존재를 인정하는 ‘채무승인’과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설시하면서, 채무승인은 소멸시효 완성 전 권리의 존재를 인정하는 관념의 통지에 불과하나, 시효이익의 포기는 소멸시효 완성을 알고 있음에도 그 법적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의사표시라는 점에서 효과의사의 존재를 요한다고 봄.

② 또한 대법원은 경험칙상 채무자가 일부 변제를 하였다고 해서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그 이익을 포기하려 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일반적으로 채무자가 자신의 불리한 권리 포기를 쉽게 선택할 가능성은 낮고, 오히려 시효완성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부 변제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설시함.

③ 대법원은 비교법적 검토에서도 우리나라의 ‘추정 법리’는 특이한 법리임을 지적하며,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 등 다수 국가에서는 단순한 일부 변제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하지 않고, 구체적 사정에 따른 개별적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함.

④ 나아가 대법원은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는 채무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만큼 엄격하고 신중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기존 판례의 입장을 지적하면서, 단순히 일부 변제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함.

결국 대법원은 시효완성 후 일부 변제를 한 경우,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도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 명확히 하면서, 종전 판례를 변경함.

 

3. 본 판결의 의의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50여 년간 유지되어 온 종전 판례 법리를 변경한 것으로 아래와 같은 의의를 가짐.

첫째, 채무자의 권리 보호를 대폭 강화함.  기존에는 일부 변제만으로도 시효이익 포기가 추정되어 채무자가 불리한 지위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번 판례로 인해 채무자는 시효이익을 쉽게 상실하지 않고, 그 포기가 인정되려면 구체적이고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게 되었음.

둘째, 금융기관 및 채권추심업체의 추심 관행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임.  그동안 일부 금융기관들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라 하더라도 일부 변제를 받아내어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며 채무를 계속 추심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으나, 이제는 단순한 일부 변제만으로는 위와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의 회수가 종전보다 상당히 어렵게 될 가능성이 있음.  

따라서 기업 및 금융기관은 시효가 완성된 채권의 관리·추심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며, 특히 단순히 일부 변제 사실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적극적으로 소멸시효의 중단 및 회수 조치를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