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에 걸쳐 부외자금이 조성되고 정치자금으로 사용되는 등의 위법행위가 발생하였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통제나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과 해외 규제기관이 부과한 추징금 및 과징금 납부로 인한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례
1. 사안의 개요
원고들은 A 주식회사(이하 ‘회사’)의 소수주주들이고, 피고들은 회사의 전직 대표이사 및 이사들임. 원고들은 피고들이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거나 임무를 해태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음을 이유로 피고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였음.
원고들은 피고들의 감시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① 회사 임직원이 정부 인허가 없이 통신위성을 해외에 매각한 행위에 관한 감시의무 위반(피고 1), ② 특정 재단법인에 대한 재산출연에 관한 감시의무 위반(피고 2 내지 12), ③ 대관(對官) 부서 임직원들의 부외자금 조성 및 불법 정치자금 송금에 관한 감시의무 위반(피고 2, 13), ④ 통신시설 등급 허위신고와 이로 인한 화재 및 통신장애에 관한 감시의무 위반(피고 2) 등을 주장하였음. 그리고 원고들은 위 ③항의 감시의무 위반행위와 관련하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회사에 부과한 FCPA 관련 추징금 및 과징금도 회사의 손해로 주장함.
피고들은 각 청구원인 전반에 대하여, 자신들이 법령위반 행위에 직접 가담한 바 없고, 이사로서의 감시의무 역시 위반하지 아니하여 상법 제399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다툼. 특히 이 사건에서 주된 쟁점이 된 위 ③항과 관련하여, 피고 2(대표이사)는 회사가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운영하고 있었으므로 감시의무를 해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고, 피고 13(대관 담당 이사)은 대관 부문 임직원들의 부외자금 조성에 관해 구체적으로 협의한 적 없고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함.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①, ②, ④항에 대하여 관련 피고들의 법령 위반이나 임무 해태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고들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하였음.
한편, 원심은 ③항 부외자금 조성 및 불법 정치자금 송금과 관련하여,
- 피고 2(대표이사)의 법령 위반이나 임무 해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함
- 반면, 피고 13(대관 담당 이사)에 대하여는 (i) 본인이 직접 송금한 정치자금에 관하여 유죄 판결을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었으므로 상법 제399조 제1항에 따라 법령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나, (ii) 본인이 직접 송금하지 않은 나머지 정치자금 송금의 경우 피고 13이 직접 위 정치자금 송금을 요청받기 전까지는 CR 부문 임직원들의 위법한 업무집행에 대한 이사로서의 감시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고, (iii) 다만 위 송금일 다음 날부터는 회사의 이사로서 부외자금 조성 및 정치자금 송금에 관한 CR 부문 임원들의 업무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었음에도 고의 또는 과실로 감시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임무를 해태하였다고 판단하였음.
- 그러나 피고 13의 위와 같은 손해배상책임의 범위와 관련하여, 정치자금으로 송금된 부외자금이 모두 반환되어 이미 손해가 전보되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회사에 부과한 추징금 및 과징금은 대부분이 피고 13이 관여하지 않은 행위들이며, 피고 13이 감시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그 부과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피고 13의 행위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함.
3. 대법원의 판단: 원심판결 파기환송(일부)
대법원은 ①, ②, ④항에 관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으나, ③항 부외자금 조성 및 불법 정치자금 송금에 관한 피고 2(대표이사)와 피고 13(대관 담당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에 관하여는 원심의 판단을 아래와 같은 이유로 파기환송하였음.
-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의 판단기준과 관련하여, 대규모 회사에서 업무가 분업화되어 있더라도 이사의 감시의무는 면제되지 않으며, 특히 대표이사는 법적 위험이 높은 업무에 대해 전반적인 감시의무를 부담함. 이때, 이사가 구축해야 하는 내부통제시스템은 단순 회계관리를 넘어 위반사실을 즉시 보고·시정할 수 있는 실효적 형태로 구현되어야 하므로,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거나 구축된 시스템을 사실상 방치하여 위법행위를 방지하지 못한 경우에는 감시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음. 피고들이 내세운 추상적인 신윤리경영 원칙 및 실천지침이나 형식적인 준법통제기준은 부외자금 조성을 통제할 구체적 장치로 볼 수 없음.
- 감시의무 위반의 기간과 관련하여, 부외자금 조성은 그 자체로 회사와의 위임계약에 따른 임무 해태로서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므로, 피고들의 임원 재임 기간 중 부외자금이 조성된 전체 기간에 대하여 감시의무를 게을리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음.
- 손해배상책임 범위와 관련하여, 상법 제399조에 따라 회사에 배상하여야 하는 손해는 법령위반 및 감시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 정치자금으로 송금된 금액뿐 아니라 부외자금 조성 자체로 인한 손해도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될 수 있음. 정치자금으로 송금되지 않은 나머지 부외자금 역시 대외 접대비 등으로 사용된 정황이 있으므로 그 중 회사의 손해로 볼 수 있는 금액이 추가로 존재하는지 심리하여야 함. 또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부과한 추징금 및 과징금의 원인사실에 부외자금 조성이 포함되어 있는 이상, 다른 여러 사유가 경합하였더라도 피고의 의무위반 행위와 추징금 및 과징금 납부로 인한 회사 손해 간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음. 단,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심리가 필요함.
4. 대상 판결의 의의 및 시사점
본 판결은 이사의 감시의무 이행을 인정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의 실질적인 요건을 제시하고, 의무 위반시 책임지는 손해의 범위를 해외 규제기관이 부과한 추징금 및 과징금까지 명시적으로 확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
대법원은 형식적인 준법통제기준이나 추상적인 지침을 구비한 것만으로는 감시의무 이행을 인정할 수 없고, 위법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즉각적인 시정 조치가 이뤄질 수 있는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내부통제시스템’이 있어야만 감시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된다는 점을 명확히 함.
기업의 실무에서는, 내부통제시스템 설계 시 단순히 제도만 구비할 것이 아니라, 대관업무 등 고위험 업무에 대한 정기적인 준법감시, 실질적인 자금 집행 증빙 심사, 내부 고발 채널 활성화 등 구체적인 통제활동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관련 기록을 남겨야 함.
특히 해외 사업을 영위하거나 해외 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경우, 이사의 내부통제 감시의무 해태는 해외 규제 위반에 따른 막대한 추징금 및 과징금 제재로 이어질 수 있고, 이 역시 임원 개인의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될 수 있으므로, 해외 규제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통제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