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전부개정 신탁법을 통해 위탁자가 살아있을 때는 위탁자가 수익자로서 신탁의 이익을 누리고, 위탁자가 사망한 뒤에는 위탁자가 미리 정하여 둔 자가 수익권을 취득하는 ‘유언대용신탁’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신탁법 제59조). 이를 통해 피상속인이 생전에는 수탁자에게 재산을 관리하도록 하면서 본인은 신탁의 이익을 누리고, 사후에는 이러한 자신의 재산을 자신의 뜻대로 처분하고 활용되기를 희망하는 의사를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엄격한 유언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유언법정주의의 제한도 받지 않으면서 그 실질은 유증이나 사인증여와 유사했기 때문에 유언‘대용’신탁으로 불리었고, 최근 활용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실무상으로는 피상속인이 생전에 본인의 재산에 대해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할 때 피상속인을 위탁자 겸 생전수익자로, 상속인 중 1인(편의상 A라 합니다)을 수탁자 겸 단독 사후수익자로 지정하는 방식이 많이 활용되어 왔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상속인이 사망한 후 사후수익자로 지정되지 않은 나머지 상속인들이 수탁자 겸 단독 사후수익자인 A를 상대로 위 유언대용신탁이 무효라면서 신탁재산에 관한 법정상속분을 되찾기 위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1심과 2심에서는 수탁자를 단독 사후수익자가 되도록 하는 것은 신탁법 제36조(수탁자의 이익향수금지의무 규정)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으므로 민법 제137조에 따라 유언대용신탁도 전부 무효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법무법인(유) 세종은 상고심에서부터 A를 대리하여 이 사건을 수행하였는데, 이 사건 유언대용신탁의 내용과 의미, 신탁법 제5조 제3항의 일부무효 법리 등을 깊이 연구하여 상고이유를 구성하여 적극 주장한 결과 최근 의미 있는 파기환송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문제되는 이 사건 유언대용신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신탁기간의 종기를 ‘위탁자의 사망시로부터 1개월 후’로 정하면서, 위탁자 생전에는 위탁자를 생전수익자로 하여 수탁자인 A에게 신탁재산의 운용 및 위탁자 부양 의무를 부담시켰고, 위탁자 사후에는 신탁을 종료하여 사후수익자인 A에게 신탁재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동시에 수탁자 겸 사후수익자인 A를 잔여재산에 대한 귀속권리자로도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법무법인(유) 세종은, 설령 수탁자인 A를 단독 사후수익자로 지정한 부분이 신탁법 제36조에 반하여 무효라고 보더라도, ① 신탁법 제5조 제3항이 신탁 목적의 일부가 강행법규 위반 등으로 무효인 경우 그 신탁은 나머지 목적을 위하여 유효하게 성립한다는 일부 무효를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 ② 수탁자를 사후수익자로 지정한 부분과 나머지 부분(위탁자를 생전수익자로 정하고 신탁종료 시 귀속권리자를 수탁자로 정한 부분)은 객관적으로 분리 가능한 점, ③ 위탁자 사망 후 수탁자가 신탁재산의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은 부양의무를 다한 자녀에게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고 싶었던 위탁자의 주관적인 의사에도 부합하는 점, ④ 피상속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재산관리와 상속관계의 안정적 정립을 도모하고자 하는 유언대용신탁 제도의 취지 등을 강조하면서, 원심이 신탁의 일부무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대법원은 법무법인(유) 세종의 위 상고이유를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환송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대법원 2024. 4. 16. 선고 2022다307294 판결). 그리고 위탁자의 사망 시 신탁재산이 귀속권리자에게 귀속되고, 수탁자를 귀속권리자로 정하는 것도 신탁법상 허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이를 통해 A는 사후수익자가 아닌 귀속권리자로서 신탁재산을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본 대법원 판결은 신탁의 일부무효 원칙을 정한 신탁법 제5조 제3항을 구체적 사례에 적용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로서, 유언대용신탁의 당사자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유언대용신탁 제도의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은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제1112조 제4호에 대해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리고, 피상속인을 오랜 기간 부양하거나 상속재산형성에 기여한 기여상속인이 그 보답으로 피상속인으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을 유류분 반환청구의 대상에서 제외하지 아니한 민법 제111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헌법재판소 2024. 4. 25. 선고 2020헌가4 등 결정)과 같은 맥락에서 상속과 관련하여 피상속인의 의사를 가급적 존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