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우 대법원 2003. 3. 11. 선고 2000다48272 사건에서 회사의 실용신안권 침해와 관련하여 대표이사에게도 침해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있기는 하나, 회사의 특허침해와 관련하여 회사의 대표이사나 임원에게까지 직접 침해책임을 묻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즉, 회사와 별개로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개인적으로 침해책임을 부담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입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을 중심으로 회사 경영진에게도 침해책임을 묻는 경향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특히 독일에서는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특허침해를 인지하거나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부작위(Störerhaftung)에 따른 침해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판례가 정립되어 왔습니다. 최근 출범한 유럽통합특허법원(UPC) 체제 아래에서도 이에 관한 논의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최근 대표이사 등 경영진의 침해책임 성립요건을 보다 정교하게 다룬 항소심 판결(2025. 10. 3.자 UPC_CoA_534/2024 사건, 이하 “대상판결”)이 선고되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본 뉴스레터에서는 대상판결에서 제시된 요건을 간략히 소개하고, 한국 기업에게 어떤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하는지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UPC Agreement는 제62조 (1)항 및 제63조 (1)항에서 법원이 특허침해 혐의자(alleged infringer) 뿐만 아니라 특허침해 혐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개자인 ‘intermediary’에 대해서도 침해금지를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상판결에서는 먼저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위 규정 상의 ‘intermediary’에 해당하는지가 문제가 되었는데 1심 법원은 이를 긍정하였으나 항소법원은 대표이사 등 경영진은 침해회사의 내부자이지 침해회사에 대해 제3자인 관계에 있지 아니하기 때문에 ‘intermediary’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 규정에 따른 침해책임을 부정하였습니다(참고로 저희 세종 IP그룹에서 지난 2025. 10. 16. 발행한 long-arm jurisdiction 관련 뉴스레터에서 소개해드린 CFI_387/2025 사건에서는 유럽 지역 내에서 전자제품의 수입판매를 위해 선임된 인증대리인(‘authorized representative’)은 intermediary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되어 금지명령이 부과된 바 있습니다).

한편 UPC 항소법원은 대상판결에서 이와 별도로 침해회사의 대표이사 등 경영진에게 침해책임을 묻기 위한 요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이는 독일 판례에서 정립된 것보다 한층 높은 수준의 인식 요건을 요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대상판결에 따르면,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특허 침해의 목적으로 회사를 의도적으로 이용하거나 또는 회사의 특허침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중단시키기 위한 가능하고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에 한하여 침해책임이 성립된다고 하며 이는 영국 대법원이 Lifestyle Equities CV and another v Ahmed and another [2024] UKSC 17 판결에서 판시한 요건과 유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상판결에서는 대표이사 등 경영진 개인의 침해책임이 결과적으로 부정되기는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UPC가 그에 관한 요건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유럽특허 침해와 관련하여 침해행위의 직접 당사자인 회사뿐 아니라 그 회사의 경영진까지 개인적으로 침해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것이 대상판결에 의하여 명확해진 것입니다. 또한 대상판결에서는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소장 송달에 의하여 적어도 그 이후부터는 침해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회사가 변호사나 변리사에게 자문을 구하고 비침해라는 취지의 법적 조언(legal advice)을 받은 사실이 있다면 침해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는 침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설시했습니다. 이와 같이 대상판결에서는 비침해 의견서가 경영진의 특허침해에 관한 인식 요건을 부정하는 실질적 방어수단으로 기능하였는데, 이는 기업의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대상판결은 유럽 기업뿐 아니라 EU 외 지역 기업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UPC는 그 동안 여러 판결(CFI_387/2025 사건, CoA_382/2024 사건, CFI_624/2025 사건 등)을 통해 EU에 주소나 영업소를 두지 않은 기업이라 하더라도, UPC Agreement 체약국 내로 침해품을 공급하거나 수출하기만 하면 UPC 관할이 성립할 수 있고 특허침해도 인정될 수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피력해 왔습니다. 이는 유럽에 별도의 법인을 두고 있지 않은 한국 기업도 제품을 유럽 시장에 공급하는 경우에는 특허침해 책임을 부담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나아가 이번 UPC_CoA_534/2024 판결에서 제시된 엄격한 인식요건이 충족되는 경우라면 한국 기업의 대표이사 등 경영진 역시 회사와 별개로 침해책임을 부담할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기업이 유럽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허침해 리스크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대상판결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즉, 유럽특허 침해 가능성이 예상되거나 경쟁사로부터 경고를 받는 등 위험 신호가 식별되는 경우에는, 초기에 비침해 의견서를 확보하는 것이 대표이사 등 경영진에게까지 책임이 확대되는 상황을 예방하는 데 매우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유럽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순간부터 회사뿐 아니라 경영진까지도 특허침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유럽특허 침해 리스크가 조금이라도 감지된다면 조기에 비침해 의견서나 FTO 검토 보고서를 확보하는 등 경영진까지 방어하기 위한 종합적인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