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4. 11. 20. 선고 2024다269143 판결)


1. 사안의 개요

피고는 자동차 제조·판매 회사로, 울산, 아산, 전주(대형트럭·버스 등 상용차)에 공장을 두고 있고, 원고는 2000. 4. 22. 피고와 직접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협력업체’인 I사에 입사하여 피고의 아산공장 내부에서 엔진제작 공정 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이후 원고는 아래와 같이 소속 협력업체가 변동되었고, 2009. 9. 26.경 J사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입사/변동일 소속 협력업체
2000. 4. 22. I사
2002. 5. 1. K사
2005. 1. 1. L사
2008. 6. 1. J사

한편 I사에 소속되어 엔진제작 등 업무를 담당한 근로자들 중 일부는 피고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소송(이하 ‘선행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선행소송의 제1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합112450 판결),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14나51666 판결)은 해당 근로자들이 피고의 근로자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였고, 대법원이 2022. 10. 27. 쌍방의 상고를 기각함에 따라 항소심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이에 원고는 선행소송 판결을 근거로 근로자지위확인 및 2018. 2. 1.부터 2021. 12. 31.까지 피고 소속 근로자로서 지급받을 수 있었던 임금과 협력업체로부터 지급받은 임금 등의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2. 법원의 판단

[제1심 및 원심] 제1심은 원고가 I사에 고용된 후 2년을 초과한 기간 동안 피고의 아산공장에 파견되어 직접생산공정인 엔진제작공정 업무를 담당하며 피고로부터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근로자지위확인청구 및 원고의 임금 청구 중 일부 지연손해금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인용하였습니다.

이에 피고가 항소를 제기하였고, 항소심(원심)에서 피고는 아래와 같은 주장을 추가로 개진하였습니다.

① 원고와 피고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원고는 2009. 9. 26.경 피고의 사내협력업체인 J사와의 고용관계가 종료되었고, 이로써 원고와 피고 사이의 고용관계도 소멸하였다.  원고는 그 이후 피고나 피고의 사내협력업체에 어떠한 근로를 제공하거나 근로제공의 의사표시를 한 바 없고, 피고와 전혀 무관한 업종에서 근무하였으므로, 원고와 피고 사이의 고용관계는 이미 실효되었다(이하 ‘제1주장’).

② 원고는 이 사건 계쟁기간으로부터 약 20년이 경과하였고, 피고의 사내협력업체와의 고용관계가 종료된 2009. 9. 26.경으로부터도 10년 이상이 경과한 2021. 1. 24.에야 비로소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이와 같이 원고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아무런 권리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피고는 원고가 더이상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원고의 권리행사는 피고의 정당한 기대에 반하는 것으로 실효의 원칙에 따라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이하 ‘제2주장’).

이에 대하여 원심은 원고가 피고에 대한 고용간주 효과가 발생하였음을 인식한 상태에서 피고에게 피고와의 근로관계를 종료하겠다는 명시적 의사를 표시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고의 제1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원고가 피고에게 권리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기대를 가지게 함으로써 원고의 권리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거나, 원고가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권리가 실효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고의 제2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대법원은 원심이 (i) 원고가 피고로부터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본제1심 판결을 유지한 판단, (ii) 원고와의 고용관계 단절이 사용사업주인 피고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고용관계 단절 이후의 기간에 대하여 피고에게 임금지급의무가 있다고 한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iii) 원고의 권리행사가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거나 실효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원심 판단은 잘못이라며,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대법원이 실효의 원칙 적용과 관련한 원심 판단이 부당하다고 본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① 원고는 직접고용이 간주된 2002. 4. 22.로부터 약 18년, 파견근로관계가 종료된 2009. 9. 26.부터는 약 11년 4개월 뒤인 2021. 1. 24.에 이르러서야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음.  그 사이에 원고가 피고의 다른 협력업체를 통하여 파견근로관계를 유지하였다거나 이 사건 소 제기 이전에 피고를 상대로 직접고용이행을 요구하는 등의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볼만한 다른 사정도 없음.  오히려 원고는 파견근로를 종료한 2009. 9. 26. 이후부터 피고의 자동차 제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직종에서 근무하였음.

② 피고의 울산공장 내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한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2008두4367)이 2010. 7. 22. 최초로 선고되었고, 피고의 아산공장 소속 노동조합은 위 대법원 판결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마침내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길이 열렸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하면서 노동조합 집단 가입을 독려하였음.  실제로 위 대법원 판결 이후 피고의 협력업체 소속 직원 수천 명이 2010년부터 2013년경 사이에 피고를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러한 내용이 언론을 통하여 보도되었음.

③ 위 2010년부터 2013년경 사이에 제기된 대규모 소송에 관하여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한 제1심 판결이 2014. 9. 18. 선고되었고, 이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2017. 2. 10. 이루어졌음.  또한 원고가 소속되었던 피고의 아산공장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하여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2010다106436)이 2015. 2. 26. 선고되기도 하였음.  그럼에도 원고는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나서야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음.

④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 규정은 사용사업주가 파견법을 위반하여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행위에 대하여 근로자파견의 상용화∙장기화를 방지하고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할 목적에서 행정적 감독이나 처벌과는 별도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의 사법관계에서도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의무라는 법정책임을 부과한 것이므로, 직접고용의무 규정에 따른 고용의사표시 청구권에는 10년의 민사시효가 적용됨(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4다211908, 211915, 211922 판결 참조).  그런데 원고는 피고와의 근로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이후부터 약 11년 4개월, 피고의 울산공장 내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한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날부터도 약 10년 6개월이 경과한 상태에서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는데, 이러한 경우에까지 실효의 원칙을 부정한다면,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는 직접고용 의사표시 청구권과의 형평에도 어긋남.

 

3. 의의

대법원은 불법파견이 성립하더라도 파견근로자가 근로자지위확인 및 손해배상 청구를 장기간 하지 않은 경우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어 권리행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